지금까지 '경제민주화'는 가짜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차기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유력 대선주자와 관련한 책이 연일 사림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통해 인물에 대해 깊은 정보 뿐만 아니라 새로운 리더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시민기자로 가입하면 누구나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를 쓴 정승일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진보 진영의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해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특히 장하성 같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1주 1표제를 주장하는 주주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재벌 개혁이 곧 경제 민주화'라는 명제를 지적했죠. '(그것이)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논리로서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한국 경제를 국제 투기 자본의 놀이터로 만들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때문에 정승일은 '재벌 옹호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소위 '경제 민주화' 진영의 정책이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산업 기반을 허물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스웨덴 식의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복지국가 건설을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제안 역시 이제는 여러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책 <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는 기존 경제 민주화 진영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틀렸음을 적시합니다.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전근대적 경제 구조가 문제이니,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한국 경제에 진짜로 필요한 개혁은 '공정한 노사 질서를 확립하여 전체 국민 소득에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저자가 요약한 '경제 민주화' 진영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3단계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에서 불평등은 부(재산)의 불평등보다는 소득 불평등 때문에 발생하며 재산소득 불평등보다는 근로소득(노동소득) 불평등이 주요 원인이다. 그러므로 재산(부)의 불평등을 주요 테제로 하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한국에 맞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오늘날 경제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라는 테제도 한국경제에는 맞지 않는다.
둘째, 한국경제의 불평등은 주로 중상주의 또는 전근대적 경제구조 때문에 발생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근로소득 불평등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은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불평등 두 가지이다.
셋째, 이 두 종류의 근로소득 불평등을 야기한 궁극적 원인은 재벌 그룹 또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이다. 따라서 재벌그룹 또는 대기업 위주 경제구조를 축소 또는 해체하고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p.121~122에서 인용)

먼저 책의 전반부인 1부에서는, 1995년 이후 민주 정부와 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된 시장주의적 경제 개혁이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말합니다. 또한, 기존 경제 민주화 진영이 내세운 불평등 해소를 위한 3단계 논리 중 첫 번째가 틀렸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저자는 이미 한국이 3만불에 가까운 1인당 국민소득과 5천만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세계 7위권의 경제 규모를 갖췄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또한 이런 '고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말한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세습 자본주의'가 얼마나 맹위를 떨치고 있는지 알려 주지요.

통계 자료를 보면, 다양한 소득 유형(종합 소득과 근로 소득, 이자 및 배당 소득 등)에서 1% 부자들이 가져가는 몫이 나머지 99%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부에서는, 위에서 인용한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3단계 논리 중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중점적으로 비판합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재벌 가문을 포함한 1% 최상위 부자들이 멋대로 갑질과 횡포를 부리게 놔 두는 자유시장 자본주의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기업-중소기업 간에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극심한 임금 격차를 해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600만명(정부 공식 통계)에서 900만명(노동계 통계) 정도까지 추산되는 비정규직의 생활 수준을 실질적으로 올리는 '진짜' 경제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월 150만 원 정도를 버는 불안정한 봉급 생활자들'을 어떻게 하면 '월 300만 원을 버는 중산층'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기존의 경제 민주화의 논리로는, 여기에 필요한 연 110조~160조 원에 이르는 금액을 절대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노동권을 보장하고 소득을 높이는 방식의 새로운 경제 민주화 담론입니다. 알바-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결성권을 인정하고 지역별, 산업별 노사 교섭이 가능하게 하여 임금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 노동자가 이사회에 참여하여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 영세 자영업자를 양산하는 정리 해고와 명예 퇴직을 법으로 금지해 나가는 것 등이 그 내용입니다.

이런 '공정한 노사 관계의 확립'은, 하청을 통해 값싼 비정규직 인력을 멋대로 부려 온 여러 재벌-대기업의 관행을 바꿔, 그들이 기술 혁신이나 사업 구조의 고도화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동반 성장'이란 구호 아래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시장 자본주의적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이 누구인지 실명으로 자주 거론합니다. 언론을 통해 보고 듣는 정치인들의 구호 뒤에 어떤 정책 논리가 숨어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일반 유권자로서는, 이렇게 확실하게 짚어 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들이 말하는 '경제 민주화'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다른 정치인을 '경제 민주화 의지가 전혀 없다'고 비난하고, 정부가 경제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지 따져 볼 수 있으니까요.

저자의 결론은 노동 소득의 재분배(1차 분배)에 중점을 둔 '진짜' 경제 민주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세금과 복지 정책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2차 분배)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스웨덴 식의 고부담-고복지 국가를 향한 '20년 간의 대장정'을 꿈꾸고 기획해 보자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확고한 의지와 단계별 계획을 갖춘 준비된 정치 세력이 나서서 법과 제도를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탄핵 인용이 되면 치러질 대선은 향후 한국의 정치 경제 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것입니다. 대선 예비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을 꼼꼼히 따져보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이번만큼은 진짜 옥석을 가려야 하니까요.

그럴 때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자의 논지에 동의하는 독자에게는 과연 누구를 뽑아야 그것이 실현될지 알려 줄 나침반이 될 겁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후보자들의 경제 관련 공약을 손쉽게 비교하고 점검할 수 있는 유용한 안내서 역할을 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