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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환단원류사 제 2권
무인(巫人)과 묘인(苗人)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남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은 각(角)이 되는 데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입체 원(○) 방(□) 각(△)이다. 내가 천문학자 앞에서 원(○) 방(□) 각(△)을 논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끈처럼 되어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3차원 구조론 만으로는 우주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 한다. 심오한 과학적 이론은 못되지만 그것을 쉽게 말하자면 하늘은 원(○)이면서 방(□) 각(△)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방(□) 각(△)이 무한대로 커지면 원(○)을 닮게 된다. 그것을 궁극적으로 보면 원(○) 방(□) 각(△)이 같은 것이다. 하여간 과학자들의 이론은 그렇다 치고 필자는 냄새나는 쾌쾌 묶은 옛날이야기를 하려한다.
원(○) 방(□) 각(△)의 원리는 피라미드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삼각형의 피라미드는 그 자체가 우주이고 사람이다. 사람이 결가부좌한 모양을 건축물에 옮겨 놓은 것이다. 그래서 입체 삼각형은 사람을 의미 한다. 명상할 때 결가부좌 하려면 머리와 양쪽 무릎 척추 끝이 피라미드처럼 되도록 하고 허리를 5도 앞으로 내밀어 곧게 펴면 된다. 양쪽 무릎 끝에 체중의 3분의 1씩 무게를 분배하여 무게의 중심이 단전이 오게 한다.
사람의 모습을 각(△)으로 하고 땅의 모습을 방(□)으로 하고 하늘을 원(○)으로 한 것은 그것이 전 인류가 태초부터 함께 써온 공통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래 된 무덤과 건축물은 원방각의 원리에 따라 지은 것을 볼 수 있다. 원(○) 방(□) 각(△)은 태초에 인류가 공통 언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둥글다는 말은 산스크리트로 뚱가(
처치워드가 해석한 그리크 문자 알파베타 뮤(mu, Μ μ)는 영어의 M에 해당하는 것이고 무(MU)제국을 뜻한다고 했다. 무(MU)제국을 뜻하는 상형문자가 방(□)이다. 이것은 육지를 뜻하며 대지, 국가, 엄마, 평원 등의 뜻이다.
“1926년 영국에 "제임스 처치워드"는 "The Lost Continent of Mu" 라는 저서에서 'Mu'라는 대륙이 1만 2천 년 전에 태평양에 가라앉아 멸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Mu'는 싯담어 사전 마(Ma)와 뜻이 같았다. '제임스 처치워드'는 그의 저서에서 직사각형(□)의 상형문자를 설명하면서 영어로 'Mu'라고 하였으며 그리크어로 뮤(mu, Μ μ)이며 무우(Mu) 이것은 마(Ma, 엄마), 어머니, 육지, 평원 등의 뜻이 있으며 과거 문명이 발달했던 무(MU)제국을 상징하는 상형문자였다고 했다. 또 알파벳 M은 무(MU)제국을 상징하는 종교문자라고 하였다.” (환단원류사 1권 20쪽)
산스크리트 마(
[인용문]
부도지 제 1장
마고성(麻姑城)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성(城)이다.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하였다. 성중(成中)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管)을 쌓아 놓고 음(音)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黃穹)씨요 둘째는 백소(白巢)씨요 셋째는 청궁(靑穹)씨요 넷째는 흑소(黑巢)씨였다. (이하 생략)
부도지 제 13장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자방(磁方)이었다. (중략)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천부단(天符壇)을 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 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량 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 길의 사이는 천 리였으며 도랑 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삼해(三海)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진(津)과 포(浦)사이에 다시 6부를 설치하였다. 6부에는 제족(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웅려(雄麗)하고 광명하여 사해를 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생맥(生脈)이었다.
[인용 끝]
원(○)은 하늘의 북극성이고 방(□)은 땅 위의 마고성이고 각(△)은 인류의 씨앗이라고 정리해두자.
테초에 인류는 북극성을 볼 줄 알았고 인류는 그곳에서 오는 생명을 기운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과 땅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이다. 글자가 없었던 시절에 원(○) 방(□) 각(△)으로 그 뜻을 새기니 이것이 천부인(天符印)이다. 글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이라 모든 건축물과 흑피옥(黑皮玉) 인형(人形) 조상(彫像) 등 구조물에 원(○) 방(□) 각(△)이나 새, 양, 소 등 그림으로 그들의 철학이나 사상, 의사 등을 표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글자가 없었던 시절에는 생긴 모습 자체가 글자 역할을 한 것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땅에 감사드리고, 여기서 땅(地)은 대지, 엄마, 부모, 자연, 인간의 본성 그런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하려면 농사만 짓고 가만히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 내 한 몸 내식구만 잘 살자고 잔머리 굴리면 널리 사람을 해롭게 하는 짓이다. 태초에는 자연 재해가 많았다. 빙하기가 끝났으므로 홍수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겠지만 그에 부수적으로 따라 오는 수많은 재난 때문에 능력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다. 하루살이가 세상에 태어나 하루 만에 죽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사람의 목숨도 하루살이 와 같았다. 자고나면 사람이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환인께서는 사람을 구해야겠기에 천도를 내리고 사람들이 광명이세, 홍익인간, 제세이화,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하도록 원(○) 방(□) 각(△)으로 함축하여 가르치니 그것이 천부인(天符印)이다. 그때 신인(神人) 환인(桓因) 천제(天帝)의 가르침으로 성인이 많이 태어났다. 그들이 무인(巫人)이다. 환인(桓因) 천제(天帝)는 자신의 천도를 이어야할 사람을 태어나게 해야 하므로 보다 많은 무인(巫人)을 길러내야 했다. 사람 한두명 잘 가르친다고 후계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무인(巫人)이 태어나 전 세계를 다스리게 하고 그 중에 뛰어난 무인(巫人)이 신인(神人)이 되는 수련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렇게 道닦는 일에 전념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 티벳 불교에는 아직도 그 전통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도 당시 전통에 따라 道人이 되기 위해 출가한 것이다. 천축국에는 부귀한 출신의 사람이 출가하여 걸식하며 수행하는 자를 파라문 이라 불렀다. 지금으로부터 2천 5백 년 전에도 환인(桓因) 천제(天帝)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많은 사람이 수행에 힘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인 학자 서량지(徐亮之)가 저서 한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 있는 중국민족기원어탑리목분지(中國民族起源於塔里木盆地)편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上帝之下都, 太帝之居, 天皇被跡的聖地, 我們業已知道, 所謂 開天闢地, 首出御世的盤古氏, 乃套取苗等族的人類起源設.
"상제의 도읍지 아래 태제(太帝)가 살고 있었다. 그곳은 천황(天皇)이 자리한 성지(聖地)이다. 아문(我們) 즉 군신(君臣) 또는 천황(天皇)의 무리들은 도(道)를 알기 위함을 생업(生業)으로 생각하였다. 소위 하늘이 열리고 땅도 열었으니, 처음으로 으뜸가는 사람이 세상(世上)에 나타났다. 그가 반고씨(盤古氏)이다. 이에 묘(苗)의 무리와 다른 종족까지 크게 뭉쳐 함께 일어난 것이 인류의 기원설(起源說)" 이라고 적고 있다. (출처 : 율곤학회 이중재)
이하 방(□) 기호를 정리하여 보면 산스크리트
개념으로 말하자면 그것뿐 만이 아니다.
[인용문]
환단원류사 제 1권
묘예(苗裔)는 해가 뜨는 동방에 정착하였다.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를 천혜의 자연으로부터 받아 해결하게 된 그들은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이전원을 떠나올 때 건축학, 천문학, 의학에 뛰어난 실력자들의 집단으로 구성된 초인(超人)들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기술로 궁전을 짓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약술한다.
1만 2천 년 전, 지금보다 해수면이 100미터나 낮았을 때는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만 앞 바다와 일본까지 모두 육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의 펑후(澎湖) 앞 바다 밑에서 무려 1만 년 된 인조 거석유적 발견 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일본의 남쪽 요나구니 해저에서도 거석유적이 발견 되었다. 그뿐인가 인도의 서부 캠베이만(灣)에서도 해저 도시 유적과 유물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괴베클리 유적까지 합쳐 모두 1만 2천 년을 전후한 유적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런 건축물들이 후대로 올수록 그 기술이 퇴보하였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는데 이것은 무슨 사실을 말해주는 것일까? 고대에 거석문화가 후대로 오면서 그 기술력이 퇴보하였다면 그 옛날에는 누군가 초인(超人)적인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고 후대에는 그런 초능력자들이 점점 줄어들지 않았겠는가? 그런 거석 유물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모든 산 이름을 무슨무슨 태백이라고 부르고 피라미드도 태백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다지왈태백(tlachihualtepec)'이라 하면 그들이 피라미드를 세우고 '다
지은 태백' 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손성태 교수가 2010년도에 발표한 논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속 인용문]
" 멕이코의 모든 산들이 태백(Tepec)이라고 불린다. 태백(Tepec)은 나와들어로 ‘산’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보기 위하여 16세기말에서 17세기 중엽 사이에 기록된 『Codice de Cholula(촐룰라 고문헌)』에 실린 촐룰라 지방의 지도를 보기로 한다.
이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산들이 ‘~태백(tepec)’ 또는 ‘~태배(tepe)’로 표기되어 있다. ‘태배(Tepe)’는 받침 ‘ㄱ’에 해당하는 ‘c’의 생략된 표기 형태이다. 스페인어는 가로 풀어쓰기 언어로서, 받침소리를 원칙적으로 발음 하지 못한다. 받침소리를 표기하면, 즉 tepec라고 표기하면 ‘태백’이라고 발음하기 보다는 ‘태배끄’라고 발음하기 쉽다. 따라서 이 받침소리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이 생략 대
신에 원주민들의 발음을 잘 표기를 위하여 스페인 신부들이 도입한 수단이 소위 ‘갑자기 발음 멈춤’을 표시하는 기호 ‘?’ 또는 ‘? ’의 도입이다. 이 표기는 영어로 glottal stop(발음 멈춤)이라고 하고, 스페인어로는 saltillo (발음멈춤)라고 한다. 따라서 ‘tepe?’라고 표기하면 [태배]라고 발음하되, 갑자기 멈추어야 한다. 그렇게 발음하면 tepe은 ‘태백’처럼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대화된 여러 문헌에서 이 표기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우리는 위 지도에서, 아스테카인들이 모든 산들을 ‘태백(tepec)’이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후반 나와들어를 기록하고 어휘를 약 3000여개 모아서 기록해둔 클라비헤로(Clavijero) 신부나 19세기에 나와들어 사전을 쓴 시메온(Simeon)도 Tepec(태백)이 ‘산’을 의미한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마지막 이중자음 ‘-tl(들)’은 우리 말의 복수접미사 ‘-들’이다.
Tepe(c)tl - monte (산) (Clavijero 문헌)
Tepe(c)tl - montana (산) (Simeon의 사전)
이것은 나와들어의 tepec(태백)이 ‘산’을 의미하고, 아스테카인들이 우리민족이라면, 우리 말의 태백(太白)은 보통명사로서 ‘산’을 의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속 인용문 끝]
또 아라비아어로 태백이다. Tell, 테페(tepe)·타페(tape) = 텔 [ tell, tel ]
아라비아어로 <언덕>을 뜻하는 말. 고고학에서는 유적만을 문제로 삼는다. 건축의 양상은 그 폐허의 형태를 좌우하여 목조가옥은 썩어 없어져 초석 또는 기둥구멍만 남았을 뿐이고, 햇볕에 말린 벽돌이나 돌로 쌓은 건축은 용재가 그대로 건축의 기초를 덮듯이 퇴적되어 같은 땅에 건축물로 되풀이된 자그마한 언덕이 형성되었다. 서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러한 건축이 이루어져 유적으로 남아 있다. 고고학상으로는 이 언덕모양의 유적을 텔·테페(tepe)·타페(tape) 등으로 부르며, 텔 아비브처럼 사람이 사는 곳의 지명으로 된 곳도 있다.
출처 : http://dic.paran.com
Tepee
이 그림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주거지를 그린 것이다. 이것의 이름도 태백(Tepee)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고개나 언덕을 '틔'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말티, 박석티, 한티 등이 있다. 이것은 태백이라는 말이 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아라비아에서 파미르고원을 거쳐 우리나라, 아메리카까지 태백이라는 동질성을 가진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태백은 하늘 神께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밝힌 바 있다. 1만 2천 년 전에 동서로 퍼져나간 환민족은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하늘을 공경했다. 오로지 믿을 것은 하늘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언제나 하늘 神께 제사 지낼 수 있는 신전(神殿)이 필요했다. 그러나 서쪽으로 이동해간 무리들은 아라비아 평원을 지나 이집트까지 갔지만 제사를 지낼 만한 산이 없었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산을 만들고 신전을 지었다. 그것이 피라미드이다. 그나마 언덕 위에 건설한 괴베클리태백은 피라미드 처럼 지을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펑후(澎湖) 해저유적과 요나구니 해저유적도 마찬가지이다. 지리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신전(神殿)을 지을 필요가 있었다. 요나구니 유적은 채석장이었을 것이다. 이곳 채석장에서 돌을 캐내어 인근 유구섬에 높은 태백으로 가져가 신전(神殿)을 건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유구 열도를 따라 비교적 높은 곳에는 아직도 고대에 하늘에 제사 지내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에 대한 것은 오래 전에 요나구니 유적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적이 있다.
돌을 깎아 신전(神殿)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1만 2천 년 전, 고대인들은 돌을 떡 주무르듯 다루었다는 사실을 학자들은 인정하면서도 왜 그런지 명확하게 밝히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이건 고고학상 최대의 미스테리임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보여주기식 일에만 관심을 둔다. 그건 나에게 매우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데 이들 유적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부상국은 신전(神殿)을 건설할 필요가 없었다. 눈만 돌리면 높은 산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봉래산이 그 중 하나가 되겠다. 신선들은 영주와 봉래, 방장산에 머물렀다. 그곳이 태백이고 신전(神殿)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거석 궁전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신선들이 사는 그곳에 사해의 제족들이 마치 성지를 찾듯이 해마다 줄을 지어 방문했다. 이러한 기록은 신시본기(神市本紀)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앞장 불함삼역(不咸三域)편에서 밝힌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인용 끝]
처치워드는 저서‘잃어버린 대륙 무(MU)’에서 무(巫)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시는 무인(巫人)이 제사장을 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무(MU)와 무(巫)는 어원이 같다고 보아야 한다. 앞서 무(MU)는
누차 강조했지만 무인(巫人)은 제사장이었다. 제국을 통치하는 왕이었으며 전 세계로 파견되어 재난을 극복하는 초능력자였다. 병을 고치고 신전을 짓고 홍수를 다스리며 불을 일으키고 이용하는 법을 가르치고 제철과 광물을 캐는 법, 도구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그들은 천부인(天符印)을 지니고 원(○) 방(□) 각(△)을 깨우친 사람들이었다. 먼저 깨달음이 있은 후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니 그로부터 제천(祭天)이 있었고 그 제도는 훗날 봉선(封禪) 제도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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