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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혁명 초간단 해설[30]《그 추억을 꼭.》
우리는,
께벗은 알몸으로 동네 앞 개울물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멱을 감아보았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긴 막대기 끝에 둥근 철사를 매달고 거기에 거미줄을 쳐서 잠자리를 잡던 마지막 세대였고
지게를 지고 소에게 풀을 뜯겨보았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초가집 툇마루에 앉아 겨울 햇볕을 쬐며
고드름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지켜본 마지막 세대였고
동네 공동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지게로 져 나르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어른들이 열을 맞춰 모내기를 하고 있을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오다가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막걸리를 쭉쭉 빨아먹고는
어지러워서 비틀비틀 갈짓자를 걸어 본 마지막 세대였고
참외밭에서 참외서리를 해 먹다가 들켰을 때
팔굽혀펴기 몇 번과 노래 몇 곡을 부르고 풀려났던 마지막 세대였고,
어느 따스한 봄날, 낮잠에서 깨어보니 어른들은 다 밭에 나가고 텅 빈 집 마루에는 나 혼자뿐,
왠지 서러운 마음에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아
곁에 있던 백구를 엄마 대신 끌어안고 눈시울을 적셔 본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그땐 제비가 어쩌면 그리도 많았는지요.
전깃줄에도, 빨랫줄에도, 하늘에도 제비로 온통 만원사례였었죠.
그 제비들 울음소리에 귀가 따가웠고
길을 가다가 낮게 나는 제비와 하마터면 몸을 부딪칠 뻔했던 우리는 마지막 세대였고,
새하얀 겨울에 썰매를 타다가 메기를 잡고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양말을 말리려다 태워서 양말에 구멍을 내본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송충이 비행기에서 내린 미군들이 준 새알 초콜릿을 먹어보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꿀꿀이 죽을 먹어 본 마지막 세대에다가
가재, 집게벌레에 대한 아주 특별한 기억을 갖고있는 마지막 세대였고
검정고무신을 신어 본 마지막 세대였으며
그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하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 본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그 새 이름이 뭐였지? 뒷산 낮은 풀숲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던 그 새.
그래서 자기 새끼를 나에게 도둑맞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 새.
새 새끼를 둥지째 훔쳐다가 벌래를 잡아다 주며 잘 키워보려다가 실패하고
죽은 새끼들을 흙에 묻고 작은 산소를 만들어주면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던 마지막 세대였고
새벽 댓바람부터 엄마 심부름으로 콩나물 외상 심부름 해 본 마지막 세대였고,
가설극장 천막 아래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가서 공짜 영화를 본 마지막 세대였고,
저 무서운 학원과외를 모르고 자란 참 운이 억세게 좋던 마지막 세대였고,
여름방학 때 서울 전농동 작은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빌딩과 차들과 육교와 넓은 아스팔트 길과 수세식 변기를 보고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그 소리는 둥둥거리던 북소리였습니다.
읍내 장날, 소몰이꾼 한 사람이 열다섯 마리의 소를 몰고갈 때 땅이 흔들리면서 나던
소들의 그 발자국 소리말입니다.
소몰이꾼 아저씨는 유치원 선생님 같았고,
우람한 소들은 유치원 어린이 같았던 그 커다란 모습을 지켜본 우리는 마지막 세대였고.
뒷간에서 똥을 눈 뒤 신문지나 공책 같은 뻣뻣한 종이로 밑을 닦아도 상처 하나 나지 않던
질기고 튼튼한 항문을 가지고 있던 (요즘 사람들이 그런 종이로 밑을 닦았다가는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나서 매일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 발라야 함) 마지막 세대였고,
논도 흙, 밭도 흙, 마당도 흙, 마을길도 흙, 자동차 다니는 신작로도 흙... 그래서
1년 365일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를 밟지 않고도 살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였는데다가
가로등이 없어서 어두운 밤, 무대만 환하던 마을 콩쿨대회 넓은 마당 제일 안쪽 구석에 숨어서
동네 형들이 휘저으며 무섭게 벌이던 세과시를 두려움에 떨며 지켜보았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집집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우리는 마지막 세대였고
나의 할아버지의 아드님께 아빠가 아닌 아부지 라고 부르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사진사가 끌고 다니던 리어카 그림판 앞에서 사진을 찍어 본 마지막 세대였고
입술까지 흘러내린 누렇고도 아주 차진 콧물을 쪽! 빨아먹고는
따듯한 난롯가에 앉으면 옷 밖으로 슬슬 기어 나오는 피를 나눈 형제 같은 보리쌀 만한 이를
손톱으로 꾹꾹 눌러 죽여 본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아, 정월 대보름! 가슴 뛰던 그 맑고 환한 밤중에
볏단에 불을 지펴 들고 달님께 절을 올리며 소원을 빌고
불깡통을 돌리다가 이웃동네 친구들과 돌팔매질을 해 본 마지막 세대였고,
우리 초가집 마당에서 큰 형님 장가가시던 날,
맛있는 음식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으스댈 수 있었고
연지 찍고 곤지 찍고 눈썹 그리신 예쁘신 형수님이 정답게 불러주시던 도련님! 소리에
쿵쾅쿵쾅 가슴이 뛰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만 쌀밥에 고기를 먹어보았고
명절에만 새 옷을 얻어 입었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예쁜 장화가 신고 싶어 비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마지막 세대였고,
『말 안 듣거든 막 때려주세요!』
부모님이 학교 담임선생에게 이렇게 말하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천만다행 이도 TV가 널리 보급되기 전, 컴퓨터가 나타나기 전에 어린 시절을 보내
그것들의 무서운 폭력에 동심이 파괴되지 않아도 되었던 마지막 세대였고,
학교가 끝나면 신작로에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다가
삼발이 트럭 뒤꽁무니에 올라타고 집까지 온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등 뒤에 둘러 맨 책보 보자기 속에는 벤또도 함께 싸여있었고
먹고 난 빈 벤또 속에서 울리는 숟가락 젓가락의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좋아서
뛰고 또 뛰었던 마지막 세대였고,
우리 손으로 제기, 썰매, 딱지, 자치기, 방패연, 가오리연을 직접 만들어 본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높은 전봇대, 그보다 몇 배나 더 높은 파란 하늘의 미루나무를 존경스런 마음으로 올려보다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섭도록 더 높은 건물이 지어지는 바람에
갑자기 작아진 미루나무를 보면서 우울해했던 마지막 세대였고,
맞선을 보는 자리에서 수줍음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던 마지막 세대였고,
지구에서 떠나서 지금은 어느 별에서 그 어여쁜 모습을 피우고 있을지 모를
솜털이 보드랍던 할미꽃의 마지막 모습을 마지막으로 지켜본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그리고,
키가 작고, 힘이 약하고, 공부를 못하고, 집이 가난하고, 엄마가 없고, 도시락을 못싸가고
옷과 신발과 가방이 싸구려인 나 같은 아이도 왕따를 당하지 않던
아, 우리는 그렇게 기적 같으면서도 인간다웠던 마지막 세대였고
그렇게 자연의 아들 딸로 자라난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내 생각에는, 마치,
그런 기억, 그런 추억이 없는 사람은
영영 구원에 이를 수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민중혁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 마지막 세대가 경험한 그 아름다운 추억을
나의 후손들에게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기 때문이고
나의 민중혁명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더러운 확신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민중에 살고 혁명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인 것 같습니다.
2016년. 4월. 21일.
민중혁명이 온다. 강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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